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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의외의 발견

심슨군이 누누히 말하기를, 놀이할때 보면 연서가 현진이보다 잔머리는 더 좋은것 같은데, 집중력이 없어서 공부머리는 아니라고 했다. 

책 읽어줄때 한두장 넘어가면 벌써 딴데가서 놀고 있는것만 봐도 충분히 알수 있다고 했다.

내 눈에도 연서에게는 순간적인 두뇌회전은 조금 있지만 '은근과 끈기'는 없어 보였다.


몇달전, 현진이에게 접이식 쇼핑카트를 접어서 한쪽으로 치우라고 시키고 짐 정리를 하는데,

자기가 그걸 어떻게 접느냐며 얼굴이 벌게졌다.


엄마 아빠가 폴딩카트를 펼치고 접고 하는것을 수차례 흘려봤으면서도, 그 단순한 과정도 겁내하는 현진이를 한심해하며 마저 짐 정리를 하고 있는데,

"엄마, 연서 천잰가봐! 다 접었어!" 라고 소리쳐서 보니, 연서가 폴딩카트를 착착착 접어놓았다.


'야, 5살 연서도 하는데, 8살인데도 못하는 니가 멍청한거 아니냐?'라는 말이 목까지 차 올랐다.

그나저나 연서의 저것이 과연 잔머리일 뿐인건가?

혹시라도 연서가 머리 좋으면 어떡하지?


2016. 11. 21. 반친구 생일때 선물 전달식


괜한 걱정이었다.


지난 10월 11일, 생일 축하 편지에 대해서 포스팅 하면서, 때마침 현진이 한글공부 시작한 개월수와 같은 시기라서, 어디까지나 '기회균등의 차원'에서 연서에게도 한글공부를 조금 가르쳐 보고, 아직은 아니다 싶으면 내년 봄에 다시 제대로 가르칠 생각으로 10월 중순 무렵 바로 실천에 옮겼다.

그 결과 나는 요즘 내 발등을 찍고 있다.


연서에게는 역시나 공부 머리는 없었다.

그런데, 없는 줄 알았던 '은근과 끈기'가 있었다!

그래서 환장한다.


한글공부 시작하고 며칠 안되어, 나의 머리 뚜껑이 열리고,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되고, 입에선 고래고래 2마리가 뛰쳐나올때, 한껏 위축되어 눈물콧물 찔찔 흘렸던 연서를 보면서, 연서에게 한글공부 하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났을 줄 알았다.

나 역시 연서한테 한글공부는 아직 무리라는것을 직접 확인했고, 내년 봄으로 미룰 생각이었다.


그런데, 연서는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매일매일 한글공부 하고 싶어서 몸살이 나 있는 상태이다.

그렇다. 연서에게 은근과 끈기가 있었던 것이다.


다만, 집중력이 없어서인지, 공부머리가 없어서인지 가르치는데 애를 먹고 있어서, 안그래도 매일매일이 바쁘고 피곤하고 귀찮은데, 별로 효과 못 보는 연서의 한글공부까지 보태지니, 기회균등이 곧 낙장불입이 된 상황에 내가 내 발등을 찍고 싶다.


(11/22) 연서가 그린 인어공주. 잘 그렸다고 칭찬해주니


'인어공주가 앉아 있는 거' 라며, 한 장을 더 그린다.


현진이가 기적의 한글 학습 책으로 한글을 수월하게 배워서 연서도 똑같은 책으로 가르치고 있다.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 10글자를 배우고,

가갸거겨고교구규그기 10글자를 배운다.

그렇게 ㄱㄴㄷㄹ순으로 차례차례 배워야 된다.


2년전 현진이는 주3~4회, 하루에 1단원씩 배웠다.

물론 현진이때도 초반엔 가르치다가 답답한 마음에 큰소리쳐서 수차례 울고불고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느정도 진행되니 탄력을 받았다.

'한글 진도가 엄청 빠르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고, 

기적의 한글 학습 교재가 너무 좋아서 그 교재로 공부하면 누구나 그 정도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날의 연서를 보니 후아~~~~학!


연서도 처음엔 하루에 1단원씩 끝내다가, '라랴러려' 부터는 1단원을 3~4일씩 붙잡고 있다.

차츰 패턴을 이해해서 응용 확장하는게 아니라, 외울 분량이 많아지는걸로 받아들이곤 어려워 한다.


진도가 나갈수록 앞에서 배운 글자가 섞인다.

'마먀머며'를 배우면서 '어머니'를 읽어야 되는데,

'아야'를 해서 '어!'를 읽고나서, '머'를 읽기 위해 '마먀'로 '머!'를 읽는 사이에 '어'를 까먹는다.

다시 '어'를 읽도록 시키면 '아야'를 읊으며 '어'를 생각해내는 사이에 또다시 '머'를 까먹는다.

그렇게 연서는 '어'와 '머'를 두고 자기 자신과 박터지게 싸우다가 간신히 '어머'를 읽었을때, '니'를 읽기 위해서 '나냐너녀노뇨누뉴느'를 하면서 앞의 '어머'는 하얗게 불태운다.


'나냐너녀노뇨누뉴느'를 읊어서 '니'를 끄집어 낸다. '나'로 시작해서 차례가 닿을 때까지 읊는다. 

물론 교재의 내용도 그랬고, 나도 그렇게 가르치긴 했다. 하지만 어느정도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니'를 곧바로 읽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곧바로 읽는 시기야 결국엔 오긴 오겠지만, 그 전에 모녀간에 애정이 파탄나게 생겼다.  

그날 연서는 고생하신 어머니를 떠올리면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가 될만큼, 나한테 큰소리로 혼나서 눈물을 주륵주륵 흘려야만 했다.


첫번째 '어머니'까지는 내가 쓴 것 같은데,

연서와의 글씨 경쟁에서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젠장


나는 나대로 퇴근해서 저녁 먹고 치우고, 현진이 숙제 봐주고 공부 봐주고, 한자시험 준비 및 집 정리 등등. 일상이 바쁘고 피곤해 죽겠는데, 연서는 자기도 한글공부 시켜달라고 매일같이 조른다.


어쩌다보면 정말로 시간이 없어서 다음에 하자고 말하면, 내일은 꼭 하자며 나를 다짐시키고, 이튿날되면 약속은 지켜내라며 나를 달달 볶는다.

한글공부가 자꾸 뒷전으로 밀리니까, 한글공부 먼저 하고나서, 설거지는 자기 잘때 하라고 말한다.

요즘은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글씨들 중에서 자기가 배운 글자들을 가리키며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런 상황들만 놓고보면 연서가 참으로 기특하다.

그런데, 집중력도 없고 공부머리도 없다. 뜨하~


집에서 한글공부를 처음 시작한 개월수는 현진이랑 연서가 거의 같지만, 생일이 느린 현진이는 6세의 4~5월에, 연서는 5세의 10월에 시작하는거라서, 그동안 어린이집에서 통글자로 된 나름의 한글공부에 노출된 기간을 감안하면 현진이가 조금 더 유리했겠다 싶다. 게다가 그 당시 현진이는 구몬 국어와 기적의 한글 학습 책을 병행 했었다.


이제 한달 밖에 안되었으니 많은걸 바라진 않는다.

하지만 진도가 꽉꽉 막힌 상태로, 효율성 낮은 한글공부를 계속하느라 나는 성가시고 피곤한데,

연서의 불타는 학구열 때문에 그만두지도 못해서, 한글공부 괜히 시작했다는 폭풍후회만 하고 있다.


어쨌든, 현진이에게만 은근과 끈기가 있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연서에게도 은근과 끈기가 있었다!!

그 사실을 발견해서 기쁘면서도 왠지 슬픈.., 

기픈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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